매주 수요일은 일찍 퇴근 날입니다.
과외를 몰아서 하는 날이거든요.
지난 수요일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스타벅스에 들러..
겨울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마셔줘야 하는 시즌 한정판
"Chestnut Praline Latte 체스넛 프랄린 라테"를 마시면서 과외를 하러 갔습니다.
밤을 조려서 만든 시럽이 들어가는 라테인데,
12월에만 마실 수 있어서, 일 년 동안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다고 상을 준다는 생각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사 마시려고 노력하는 아이템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도 한 잔씩 사주고요.
하지만 늘 사람이 많아서 자주는 못 마셔요. 커피 한잔 사는데 오후에는 20분이 넘게 걸려요.
늘 시간이 쫓겨사는 삶이라... 5분 일찍 움직이는 것도 왜 이리 힘든지...
날씨는 쌀쌀한데, 궁둥 뜨끈하게 해놓고 운전하면서,
파란 하늘을 보면서,
따뜻한 맛있는 커피 마시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인생 뭐 있나.. 이게 행복이지..
운전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서민정 씨의 '이방인'이 생각났습니다.
미국 여자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운동이라서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고,
같은 미국이라 하기엔 너무 다른 공간에 살지만, 공감이 많이 됐거든요.
처음 미국 와서 유학생 놀이(비자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학교 가는 것뿐이었어요)를 할 때
가장 싫어했던 그룹의 사람들은
이쁘고 날씬하고, 어린 백인 여학생들이었습니다.
괜한 자격지심이었는지 몰라도,
그것들이(!) 눈 치켜뜨면서 나를 쳐다볼 때 왠지 모를 재수 없음이 느껴지더라고요.
대부분 그들은 늘 시크한척하고,
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거나, 미소를 건넨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같이 수업 듣는 한 학기 내내 눈 마주친 적도 없었으니까요.
어디 가나 이쁜 것들은 다 재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는데요.
내가 미국 사람들보다 정말 잘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더라고요.
그들은 저를 "말 잘 못하는 Asian Nerd(너드, 범생)"이라고 불렀겠지만,
뭐라도 하나 잘해야겠기에... ㅠㅠ
내가 말은 잘 못해도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생 통틀어 정말 열심히 공부했을 때는 그때였던 걸로 회자됩니다.
내가 공부 할 머리가 있는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 였으니까요.
이쁜 애들이 한두 명 있을 때도 재수 없었는데,
(걔네는 지들끼리만 놀거든요)
서민정 씨가 사시는 맨해튼,
세계에서 최고 비싼 부촌에,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자부하며 산다는 뉴요커들 사이에
얼마나 잘난 사람들이 많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출퇴근하는 시골길입니다.
한겨울인데도 상록수가 많아서 푸르러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주는 고속도로 주변은 모두 이런 풍경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저녁이 심하게!! 있는 삶이 어색했었습니다.
그때는 시내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었는데,
남편이 5시에 퇴근하면 5시 15분이면 집에 왔거든요.
서울에서 매일 야근 아니면 회식! 각종 모임을 하며
9시 전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제 인생에 직업 없이 살아본 첫 경험을 미국에서 해봤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다니고,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양강좌도 듣고,
봉사활동도 하고, 외로우신 할머니들 찾아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영어로 설명을 잘 못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참 많이 했습니다. ㅠㅠ
멀리서 온 이방인!
따뜻하게 봐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경계를 하며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틀린 사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특히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일단 깔고 보잖아요.
어떤 할아버지는 저보고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니,
저를 성공한 사람 취급하며, 축하를 해주더라고요.
자기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하시면서
너는 여기 와서 참 다행이라고요.
아마도 그 할아버지, 한국을 그때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도
여기서는 유색 외국인 노동자!!
백인이 다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여러 민족이 모여사는 다인종 국가여서
자잘한 설움은 있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어요.
워낙 물에 물 탄 듯 유유자적, 대책 없이 긍정적인 성격도 크게 한몫한 것 같습니다.
30평생.
외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까운 동남아에서 은퇴 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봤지만
아메리카 대륙은 너무 멀어서 제 여행 리스트에 넣어본 적도 없었거든요.
미국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남편 친구의 연락으로
지금보다 조금 젊었던 우리는 겁 없이 미국행을 결정했습니다.
인생 뭐 있어?
몇 년 여행 간다 생각하고 가보지 뭐
아니 유학 간다 생각하자.
IMF 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남편과 저는
유학이나 어학연수 가는 친구들을 막연히 부러워했었어요.
그때만 해도 유럽여행이나 어학연수 다녀온 친구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같이 정보가 넘치던 때도 아니었고,
대단히 뭐가 있어야 가는 거라고 우와~ 좋겠다 했을 때여서
아마 제가 학생 때 돈 모아서 한 달 동안 유럽여행 간다고 했으면
우리 엄마가 저를 묶어 놨을지도 몰라요.
돈만 생기면 쓰는 스타일이었을 때라 모으지도 못했겠지만요. ㅋ
우리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준비 없이
놀러 가자 하는 생각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처음 몇 년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여기저기 놀러도 정말 많이 다녔어요.
언제 여길 또 와보겠어. 살 때 많이 많이 돌아다니자.
우리의 미국 생활을 지탱해준 건
한국의 전셋값
그렇게 5년 넘게 미국에서 생활하고 나니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여파로 힘들어졌을 때,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왔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한국의 전셋값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한국으로 돌아가는갈 엄두도 못 내겠더라고요.
선월세 두 달 치 만 있으면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 미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일단 집을 구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각자 부모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면 어떨까 말씀드렸더니, 부모님들도 쌍수로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모든 건 집 때문이었습니다.
뉴저지에서 살면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남편 대학 동기는
"그 시골에서 어떻게 사니??"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그 친구에서
"두세 시간씩 출퇴근하면서 그 돈으로 그 비싼 곳에서 어떻게 사니??" 합니다.
뭐 시골이지만 우리 동네에서 사는 장점도 많이 있습니다.
한 미국 할머니는 낡은 마우스 갈아드리고, 컴퓨터 몇 가지 봐드렸더니,
빌 게이츠가 너를 데려다 써야 한다고도 하셨고요.
젊은 브레인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40 넘은 평범한 우리도 젊은 브레인 축에 껴줍니다.
우리 동네 살기에는 좀 아까운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지요. ㅋㅋㅋ
깨끗한 자연환경에, 생활물가와 집도 엄청 싼 편이고요.
한국 시골도 마찬가지지만
아주 넓고 깔끔한 집을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돈으로도 살수 없는 문화적 혜택이 적지만
그래서 돈도 많이 아낄 수 있어요.
처음 한국에서 왔을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엄청나게 커지고,
소소하게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말이죠.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살수 있어.
인터넷만 되면 어느 나라에 살아도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차이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제로썸 법칙같이
또 여기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지금도 만약에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2019년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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